조선시대는 서양의 여러 나라들이 동양의 나라들과 무역을 하기 위해 서해 바다를 통하여 주주 무역을 요구하기도 하고, 때로는 육지에 올라와서 선량한 우리민족을 괴롭히고, 힘없는 농민들의 물건을 빼앗아 가기도 했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문호 개방(자기 나라의 영토를 다른 나라의 경제적 활동을 위해 터 놓음)을 하지 않았다.
서해를 통하여 들어오는 왜군과 서양 상선들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조선 선조 때 덕포진을 세운 것으로 그 당시의 기록을 보고 추정한 것이다. 덕포진은 오늘날의 군부대인 진(군사가 머물던 곳)이 많은 강화에 소속되어 있다가 숙종 임금때에 지금 우리 고장인 통진현으로 소속을 변경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수군 부대장 격인 첨사(조선 시대 절도사 지휘 아래 있던 정3품의 위치)한 명과 316명의 수군들이 방선(병선의 한 종류)두 척, 병선 한 척, 하후선 세 척을 가지고 있었으며, 23칸 정도의 건물 세 채가 있었다. 덕포진에는 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포가와 마지막포가 위쪽에 파수청이라하여 외적이 쳐들어 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한 집에 있었고 덕포진 가운데에는 포를 쏠대 사용하는 불씨를 보관하는 화로가 있다.